국민은 천원으로 병원을 찾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어 한다

[뉴스엔뷰] 나는 종종 고발해 버리고 싶은, 고소해 버리고 싶을 만큼 약 오르고 열 받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상황을 공감하며 전적으로 내 편이 되어줄 변호사를 찾기란 꽤 어렵다.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수임료를 감당하기도 어렵지만, 실제로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공감 능력백배를 갖춘 인간적인 변호사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 이어서다.

몇 년 전 공중파에서 방영된 천 원짜리 변호사는 배우 남궁민 씨가 연기한 천지훈 변호사의 수임 사건들을 담은 12부작 드라마이다.

화려한 패션의 주인공 천변(천지훈 변호사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천 원짜리 변호사라는 별칭을 줄인 말이기도 하다)에게서는 지적인 부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외모와 행동을 보여주지만 그야말로 실력은 우주 최강이다. 물론 드라마니까 그렇겠지만

더욱이 놀라운 것은 천변은 맡은 사건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무패신화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수임료는 단돈 천원'이어서다.

천변의 사건 수임 조건은 비싼 수임료나 권력이 아닌 단지 의뢰자의 억울함과 아픈 사연'이 그 기준이다.

드라마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우리네 시청자들은 돈 없고, 배경 없고, 힘없는 약자의 편에 서서 변호해 주는 천 원짜리 변호사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현실에서 찾을 수없는 '자의 이상적인 모델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절망의 공간에서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는 의대의 정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공증보건의료 체계의 한계를 느껴 이를 보완하고, 국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확충하겠다는 취지이다.

정부 발표의 마이크가 꺼지기도 전, 의료계는 집단 반발했다. ‘준비없는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체계를 더욱 악화 시킬 뿐'이라는 입장이다.

228일자 기준, 전공의(레지던트) 9천 여명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의대 재학생 중 13천여명이 휴학계를 신청했다.

정부는 휴학하면 의사면허 시험 못 보게 한다', ‘사직서 낸 의사들, 앞으로 진료 보기 어렵다', ‘사직과 휴학 신청을 철회하고 229일까지 병원으로 돌아오라' 등 각종 회유와 협박을 발표하고 있으나, 전공의와 의사들의 입장도 강경하다.

현재 의료 현장은 어떨까?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소변줄을 직접 빼고, 80대 어르신이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으며, 의료 인력의 빈자리를 환자들에게 직격타를 주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야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의사들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정부는 의료계 현장을 파악하고 의사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정책을 낸 것일까? 의료계는 사직과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처방 밖에 없었을까? 국민들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의료 서비스가 만족스러울까?

우선, 의사가 되는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의과대는 예과 2, 본과 4년 총6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의사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자격을 취득한 후 종합병원(또는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를 몇 년 견딘다. 사실 고단한 길이다. 수련과정도 길고, 작은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투여된다. 4년제 일반 학위를 취득과정보다 2년 더 학비를 내야하고, 학비 역시 일반대학보다 곱절을 비싸게 치른다.

인턴까지 수련한 이후에도 전문의 아래에서 몇 해 간 수련의 과정도 거치며 환자를 보고, 연구도 쉼 없이 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빡 쎈' 직업임은 틀림이 없다.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정책을 다시 살펴보자. 현재 3차 병원이라고 이야기 하는 대형병원,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등의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하면서 연구하고 후학까지 양성할 기력이 남아 있을까?

대학에서 의대생만 많이 뽑아놓으면 질 좋은 의사들이 대거 나오는 상황인가? 적어도 한 해 의사다운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투여되는 비용은 얼마이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며, 어떤 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자가 있는가 등을 파악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이미 드러나 있는 의료현장의 문제라도 먼저 파악이 돼야 할 것이다. 지방의료의 붕괴이유와 대응, 의료 과목별 치우침과 해결책 등이 먼저 나와야 할 정책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원천적 해결방안을 정책적으로 수립하고 난 후에 인력의 증원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정책을 세웠다면 내년부터 의대생을 증원할 것만이 아니라 당장 지금부터라도 강의실, 실습실, 교수진 등을 미리 확보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것이 정책 수립의 기본이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없는 상태에서의 무작정 인력 증원은 또 다른 오해를 낳기에 부족함이 없다.

갈라치기와 파업 유도를 통해 정권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하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정책의 수립에는 세밀한 원인파악과 그에 적합한 대응이 기본이다. 또한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권력을 탐하고,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게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권력이 행사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국민은 천원으로 병원을 찾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열심히 일 한 댓가로 받은 수고비에서 일정액을 세금으로 내며 살고 있다.

나를 지켜달라는 일종의 보호비명목이다.

나 역시 천원'만 있으면 건강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이길 바란다.

환자에게, 아니 국민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기에 천 원짜리 의료가 기본이길 소망한다.

 

 

 

 

 

 

 

 

 

 

 

허경진 방송작가 (writerh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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